지난 12월 19일, 잠원동 서초여성가족플라자에서 서초구양성평등활동센터주최 ‘2023 서초구 성인지통계 포럼’이 열렸고 노동도시연대도 참관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을 위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 평가할 때 성별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성평등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성 주류화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양성평등기본법(구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성별영향평가 제도, 성인지 예산 제도, 성인지 통계 작성이 시행 중입니다. 이 중 성인지 통계는 나라 전체 또는 한 지역의 성별 현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서초구는 비교적 일찍부터 ‘성 주류화 정책’이 준비되고 시행된 곳입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만들어진 다수 여성운동 단체들이 서초동 일대 여성 법조인과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성차별‧성폭력 근절, 여성 권익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요.
1990년대 후반 전국 최초로 구립 여성회관(현 서초여성가족플라자)이 건립됐고, 10여 년 전 부터 독보적으로 구 단위의 성인지 통계를 작성하고 공표 중입니다. 또한 서초구양성평등활동센터(이하 센터)는 서울시 자치구 중 최초로 도봉구와 함께 2020년 설립되어 지역 내 다양한 연구‧조사 사업, 시민교육, 공동체 활동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3년 연속 특정 주제별 서초구 성인지 통계를 작성하고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요. 2021년엔 ‘가족‧안전 분야’, 2022년엔 ‘경제활동‧의사결정’이었고 이날 포럼에서 발표된 주제는 ‘교육‧문화’ 분야였습니다.
자료는 서초구양성평등활동센터 홈페이지 → ‘아카이브’ → ‘발간자료’ 에서 살펴보실 수 있어요.
10~30대 청년층 성역할 인식 차이 뚜렷해
그중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결과는 ‘성역할 인식’ 통계였습니다. 구민 75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성역할 고정관념, 성역할‧성별 지위변화, 성차별적 인식에 대한 서초구민의 생각을 알 수 있었는데요.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바와 같이 10~30대 이하 청년층 여성과 남성간의 인식 차이가 매우 뚜렷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10~20대 여성은 14%만 동의한 반면, 10~20대 남성은 41%가 동의했고요. ‘여성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 직업은 남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질문에 대해 10~20대 여성은 9.8%만 동의한 반면, 10~20대 남성 16.6%가 동의했습니다. ‘남성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 직업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질문에 대해 10~20대 여성은 16%만 동의했지만, 10~20대 남성은 40%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또 ‘실업률이 높을 때 여성보다 남성이 우선 채용되어야 한다’는 질문에는 10~20대 여성 1.5%만 동의했지만 10~20대 남성은 26.3%로 무려 25배 이상 차이가 났는데요. ‘남성이 여성 밑에서 일하는 것은 불편하다’는 질문에 대해 10~20대 여성 7.4%가 동의했지만 10~20대 남성은 27%가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여성들은 평등을 주장하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질문에 10~20대 여성은 18.8%가 동의했지만, 10~20대 남성은 66.9%가 동의해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30대의 경우도 여성은 37.5%만 이 질문에 동의했지만, 남성은 60% 이상이 동의한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일부 문항, 고학력자일수록 성차별적 인식 더 강해져
이날 포럼에서 의미 있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몇몇 문항에 대해서는 고학력자일수록 성역할 인식에 대한 고정관념과 차별적 인식이 높아지는 다소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었는데요. 문항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남성에 대한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 ①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 중졸 이하 0%, 고졸 이하 22.7%, 대졸 이하 26.7%, 대학원 이상 36.9%
남성에 대한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 ②남성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 중졸 이하 0%, 고졸 이하 28.3%, 대졸 이하 32.3%, 대학원 이상 33.5%
남성에 대한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 ③실업률이 높을 때 여성보다 남성이 우선 채용
‘그렇다’ 중졸 이하 0%, 고졸 이하 17.2%, 대졸 이하 23.1%, 대학원 이상 24.7%
남성의 지위 변화에 대한 태도 ⑧아내의 소득이 남편 소득보다 많으면 남편은 기가 죽는다
‘그렇다’ 중졸 이하 0%, 고졸 이하 22%, 대졸 이하 32.8%, 대학원 이상 32.2%
성차별주의 태도(적대적) ⑫남성은 여성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 중졸 이하 18.8%, 고졸 이하 19.1%, 대졸 이하 30.7%, 대학원 이상 42.5%
성차별주의 태도(적대적) ⑬요즘 여성들은 평등을 주장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 중졸 이하 43.7%, 고졸 이하 43.9%, 대졸 이하 48%, 대학원 이상 56.2%
이 결과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할 지점이 많아집니다.
앞으로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이날 포럼에선 ‘성역할 인식’ 통계가 주요한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서초구 교육‧문화 환경 전반에 대한 성인지 통계 결과와 향후 구정에 반영되어야 할 사항들이 무엇인지 이야기됐는데요. 세세한 이야기를 다 전해드릴 수는 없지만, 이날 토론자로 참석하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역에서 성평등을 위한 시민 활동과 지원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엔 자녀들과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할 때, 저의 생각과 말이 뚜렷하지 못해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말할 수 없었어요. 여성친화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해 온 과정은 제 언어를 찾게 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별 사이의 문제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던 현 정부와, 같은 입장을 나타내는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가 대거 출범하면서 시민들의 성평등 활동이 움츠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최근 서울시도 성평등활동지원센터를 통폐합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성인지 통계처럼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생산하고, 공표하는 행정의 의무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주민‧노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 환경을 꾸리고자 하는 노력과 관심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이것을 지키고자 하는 목소리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노동도시연대도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