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북초 스쿨존 어린이교통사고의 슬픔이 가시기도 전인 12월 17일 오전 9시 8분경, 세곡동 세천근린공원 앞 삼거리교차로에서 길을 건너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버스에 치어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20일, 노동도시연대가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비교적 상가가 밀집한 은곡마을을 오가는 차량들과, 자곡동 아파트단지를 오가는 차량들이 많고 시내버스 3개 노선, 마을버스 2개 노선이 다니는 곳입니다. 인근에 세명초등학교와 세곡중학교, 2곳의 유치원과 다수의 어린이집이 있고 지난 2012년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정확한 사고지점은 스쿨존에서 10여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전날 눈이 내려 도로에 1cm 가량 쌓여있었다고 하는데요. 사고차량 운전자도 ‘도로 위 어린이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차가 눈길에서 미끄러졌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인근 주민들은 수년전부터 세곡동 일대가 제설 취약지역으로 안전이 우려돼 강남구청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빙판길 버스에 초등생 참변… 주민들 “구청 제설작업 미뤄”」(동아일보, 2022.12.18)
「강남 스쿨존 사고지, 제설 취약 불구 도로열선 등 장비 ‘후순위’」(헤럴드경제, 2022.12.21)
강남구는 2022년 12월 현재 세곡동 일대 간선도로에서 2대, 이면도로에서 3대의 제설차량을 운용중인데요. 세곡동 인구는 43,000여명으로 강남구 내 행정동별 인구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행여 ‘신도시라서’, ‘교통량이 적어서’ 등의 이유를 들어 불합리한 행정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부분은 없는지 추후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스쿨존 지정 확대, 안전펜스 교체, 교차로 안전시설 확충 시급해
현장 방문 시각은 마침 중학교 하교 시간이었습니다. 은곡마을, 은곡삼거리 방향으로 길을 건너다니는 보행자들이 많았는데요. 이곳에는 지난 2019년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가 설치되었습니다. 어린이‧청소년 등 보행약자가 많이 다니는 지역이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도시권 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서울시의 경우 보행권 증진사업을 펼쳐 2021년 신규 개통한 횡단보도의 약 50%가 이런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얼핏 보면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 속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세명초등학교와 은곡유치원 앞 도로는 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정작 교차로와 횡단보도가 있고 자동차 통행량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은 세천근린공원 삼거리 앞은 스쿨존이 아닌 것입니다. 또 다른 사고 예방을 위해 관계당국이 스쿨존 범위를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12조와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하 어린이보호구역 규칙) 제3조에 의하면 보호구역 신청은 지자체장이나 교육감 또는 시설장 재량에 맡겨져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실제 보행환경과 다소 차이가 있는 지정 및 운용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언북초 사고 희생자 故 이동원 군의 부모님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법 개정 운동을 추진해 스쿨존 지정을 재량이 아닌, 강행 규정으로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행정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현장 실사 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보행로에 설치되어있는 어린이보호구역 방호울타리(안전펜스)였습니다. 학교나 유치원 가까이 설치된 방호울타리는 가로1.5m 봉 4개 펜스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표기가 있고 빈틈의 간격이 10cm 가량입니다. 그런데 그 외의 방호울타리 대부분은 아래 2번째 사진과 같이, 가로1.5m 봉 2개 펜스였습니다.
사고지점에 있던 방호울타리가 바로 이 가로1.5m 봉 2개 펜스였는데요. 빈틈의 간격이 50cm 가량으로, 신장이 작은 어린이들뿐 아니라 성인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해당 모델 방호울타리는 사실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서 흔히 접하게 됩니다. 혹시 비용 절감 등의 이유가 있는 것까요?
한때 어린이보호구역 방호울타리는 일부 과도한 디자인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어린이를 식별하지 못하게 해 오히려 사고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는데요. 위 2번째 사진 방호울타리의 모양이 시인성(示認性)을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일지는 몰라도, 무단횡단 등 위험을 방지하는 본래 기능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단순한 설치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교체 등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 방호울타리(안전펜스)는 어린이보호구역 규칙 제6‧7조에 설치 근거가 있지만, 도로의 구조‧시설기준에 관한 규칙,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 그리고 각 지자체의 보도‧가로 매뉴얼에도 방호울타리 관련 정해놓은 규격은 없는데요.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사고지점 교차로 부근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확대를 전제로, 옐로카펫같은 교통안전시설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방호울타리(안전펜스)마저 불과 1년 전에 설치됐는데요. 세명초나 은곡유치원 앞에 LED속도표시 표지판이 있지만, 은곡삼거리에서 자곡로 방면 도로 또는 세천근린공원 삼거리 앞에 추가로 설치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바닥형 보행신호등이나 보행신호 음성안내장치가 포함된 이른바 ‘스마트횡단보도’ 설치도 검토해봄직 합니다. 성동구의 경우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21.5%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해 주목받았었죠.
자전거겸용도로를 전용도로로 바꾸면…횡단보도 사고 줄어들까
현장을 실사하면서, 이 부근에 설치된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명초 방향인 자곡로와 은곡마을 방향인 헌릉로569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데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행 자전거도로는 크게 전용도로와 겸용도로 등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겸용도로는 사실상 보행자와 분리되기 어려워 자전거도로를 설치하는 취지와 안전을 고려할 때 점점 지양되는 추세입니다.
사고지점 교차로는 자동차가 우회전‧좌회전할 때 보행자의 사고 위험이 높은 곳입니다. 만약 이 교차로 보행로의 방호울타리(안전펜스) 바깥으로 차도높이형 자전거전용도로가 설치된다면, 회전하는 차량의 회전 궤적이 커지는 효과를 발휘해 혹시나 횡단보도 사고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50% 이상이 횡단 중 발생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어린이보호구역 내 아동 교통사고 건수의 50.4%가 차 대 횡단중인 어린이 사고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사고 등으로 인해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다행히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는데요.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아동 절반은 길 건너다 차에 치여」(연합뉴스, 2022.7.10)
이번 사고 이후, 희생된 어린이가 숨진 자리에는 청담동 언북초와 마찬가지로 인근 주민들과 학생들이 국화와 추모 메시지, 물품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린이가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있는 곳이 안전한 사회일 것입니다. 노동도시연대는 보행약자가 목숨을 잃지 않고 안심하며 걸을 수 있는 강남‧서초 지역이 만들어지길 원합니다. 12월 17일 세곡동 세천근린공원 삼거리 앞에서 숨진 12세 어린이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