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서울 시내 광장들마다 다양한 종류의 집회,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광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 중심부에서, 공동체를 위해 열려 있는 공간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데요. 종종 권력자나 행정 혹은 그 땅을 소유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광장이 제 역할과 기능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남•서초는 개발된 지 수십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 광장이라 불리울 만한 장소가 극히 적은데요. 서울의 부도심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자동차 위주의 아스팔트 도로, 좁은 땅에 고밀도로 개발된 주택, 업무•상업시설로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지역을 보고 있으면 과연,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거나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어디에 꾸릴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삼성역 복합환승센터를 포함한 영동대로 개발 청사진에 그려져 있는 광장을 보며, 도시에서 진정한 ‘광장’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 8월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에 대해 서울시가 ‘집회•시위 금지’ 방침을 정한 후, 이에 맞선 불복종 활동을 하시는 정정은 회원님의 기고를 실었습니다.
광화문광장 홈페이지에는 이런 소개 글이 적혀 있습니다. “광화문 앞길은 대한민국의 중심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며 소식과 의견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고, 다양한 근현대사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길의 역사적 의미와 깊이를 계승함과 동시에, 휴식과 산책 등의 일상과 축제나 행사 등의 비일상을 연결하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 삶의 장으로서 시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소식과 의견을 나누는 장소,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화합의 공간, 일상과 비일상을 연결하는 시민의 삶의 장. ‘광장’의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서울시는 ‘광장’의 의미를 모르는 듯합니다. 광화문광장을 새로 열며 서울시는 광장 사용 허가 신청을 심사한다며 사실상 광장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초헌법적인 결정이며, 서울시가 이 광장을 결국 공공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 지난 10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의 불복종 행동 ⓒ문화연대
지난 9월 기후정의행진의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 허가를 하루 만에 전화 한 통으로 뒤집고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행태는 서울시의 이런 속내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이후 광장 사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심의 때 집회·시위 등 사용 목적은 판단하지 않겠다”며 다소 완화된 입장을 내어놓았지만, 광화문광장이 시민의 공론장이자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직접행동에 나선 시민들의 집회 신청을 ‘목적 부적합’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반려했습니다.
‘광장’은 집단적인 경험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죽은 이를 애도하며 슬픔을 나누고, 축제를 즐기며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광장에서 토론하고 주장하고 때로는 싸우며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왔습니다. ‘광장’은 시민들의 문화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인 동시에 민주적인 정치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기후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후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막는다면 그곳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닙니다.
물길과 정원, 포토스팟을 만든다고 문화공간이 되지 않습니다. 월대 복원하고 문화재 발굴한다고 역사적인 공간이 되지도 않습니다.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쌓일 때 그것이 광장의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시민의 목소리를 막은 채 보라는 것만 보고, 하라는 것만 하라는 건 시민을 관광객, 구경꾼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시민의 목소리가 주인이 될 때, 광장은 진정한 역사의 공간, 문화의 공간, 민주주의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인권단체를 비롯한 열여덟 개 시민단체는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키고 광화문광장이 시민의 공론장이자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직접행동에 나섰습니다.
지난 10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불복종 집회를 연 후 11월부터는 <애도와 민주주의의 걷기>라는 이름으로 광화문광장 주변을 함께 걸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만들고 지켜온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려 합니다. 토론하고 싸우고, 애도하고 위로하고, 춤추고 노래했던 광장의 기억과 경험을 함께 나누며 진정한 ‘광장’을 되찾는 길에 노동도시연대 회원들도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2022년 9월 7일 ‘9·24 기후정의행진 광화문광장 및 도로행진 불허 규탄 기자회견’의 발언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 정정은 회원은 문화연대의 상근활동가이자, 「노동·정치·사람」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