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을 떠올리시나요? 아마도 녹아내리는 얼음 위에서 굶주리는 북극곰이 먼저 생각날지 모릅니다. 대안이라면 태양광과 풍력발전일까요? 베란다 미니태양광 같은 방식으로 개인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은 환경단체를 후원하거나 에코백과 텀블러를 이용해서 자원 소비를 줄이는 실천에 적극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후변화라는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인지, 그리고 그런 실천으로 기후위기를 실제로 막을 수 있는지는 잘 따져봐야 합니다.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우리가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생산과 이용의 모든 단계에서 얼마나 탄소를 배출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국장 점심 보다는 육류를 식재료로 한 점심이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 훨씬 많은 온실가스의 발자국을 남겼고, 그렇다면 이를 의식해서 채식을 권할 수 있습니다. 강남구는 일찍이 2008년부터 탄소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했는데, 이것 역시 같은 맥락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탄소발자국 방식의 접근이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개인의 실천만을 중시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과 이를 묵인해 온 정부의 책임을 물을 필요성을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제철회사, 석탄화력 발전회사, 반도체 제조회사 등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10개의 기업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가 국내 총 배출량의 절반이나 됩니다. 물론 이들은 수출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규제 보다는 책임과 부담을 면제하는 정책의 수혜를 입어 왔습니다. 심지어 온실가스 배출 1위인 포스코는 지난 1월에 요즘 유행하는 ESG 평가에서 종합 A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작은 실천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동안 정작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 굴뚝이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기후위기의 불평등 문제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지난 해 7월 <세계일보>가 보도한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지역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몰려있는 충남이나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몰려있는 전남, 울산 등이 꼽힙니다. 이에 반해 가장 온실가스 감축 리스크가 작은 곳은 1위가 서초구, 2위가 강남구입니다. 가장 저렴하고 편리하게 전기를 써왔던 지역들이 위험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바깥으로 가면, 지구온난화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음에도 해수면 상승과 가뭄 등으로 매년 2,500만 명이 추가로 발생하는 기후난민들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 김기창 작가가 펴낸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민음사, 2021)은 조만간 다가올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우리가 상상하거나 짐작하지도 못할 광경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기후에 자원마저 부족해진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싸우기도 하고 억압과 배제를 겪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연대하고 사랑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기후위기를 빚어낸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고 이를 해결하거나 감내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인권학자인 조효제 교수가 기후위기를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보기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를 티핑포인트를 의미하는 1.5도라는 숫자, 또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통계 정보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기후 문해력(climate literacy)이란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인지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건조한 정보들의 습득을 넘어서 기후위기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고 또 피력하고 나누는 능력까지를 아우르는 말일 것입니다.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개인의 실천, 정치적 압박, 제도적 개선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각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각자의 삶의 지평에서 우리의 기후 문해력을 깊고 넓게 키워가는 게 더욱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오랫동안, 어쩌면 남은 삶 모두를 기후위기와 함께 해야 할 테니까요.
* 논현동에 거주하시는 김현우 회원님은 오랜 기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연구·저술을 통해 탈성장, 탈핵, 에너지전환 운동가로 활동해오셨고, 최근에는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으로 시민 대상 교육과 실천에 매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