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얼어붙는 계절이 오니 밖에 있을 때는 뜨끈한 국물 한그릇이 간절해집니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고 잔뜩 움추린채 귀가하는 걸음을 재촉할 때, 누군가 나에게 응원한다며 김이 모락모락나는 국수나 국밥 한그릇을 건낸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요?
정말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부당하게 생계를 빼앗기거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 차가운 거리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웃들에게 마치 기운을 선물하는 산타클로스처럼 뜨거운 밥을 대접하고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
바로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의 활동가들인데요. 밥통에서 8년 넘게 밥심을 나눠주고 계시는 한광주 회원님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차가운 바닥에서 내 편과 함께 먹는 밥
지난 11월 12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는 500여 명의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회 참가자들이 모였습니다. 장애인 권리법안을 연내 제·개정하고, 2022년 장애인 생존권 예산을 쟁취하기 위한 1박2일 농성 투쟁 현장이었습니다.
이렇게 1박 2일 투쟁을 하자면 이 많은 참가자들과 당일 저녁 아침, 적어도 두 끼의 식사를 함께해야 합니다. 이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식당 이용에 제한을 받는 차별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 날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과 십시일반 밥묵차가 함께 출동하여 황태국밥을 나누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밥차에 불이 켜지고, 함께 찾아온 추위에 밥차에서 설설 끓는 국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눕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출동할 때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따뜻한 밥 한 끼로 전해지는 ‘밥심’. ‘내 편’이 와 준 것 같은 힘이 생긴다는, ‘저들에게 얕보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밥차가 오면 든든하다’는 말씀도 듣습니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머무르지 않고 나아갈 힘, 밥심
밥통은 밥연대를 하기 위해 결성된 협동조합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이 밥을 하기 시작한 지는 어언 8년이 되어갑니다. 길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밥이라도 든든히 먹으면서 싸워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뜻을 모았습니다. 처음에는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대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 꾸려졌고, 당시 강남역에서 노숙 투쟁을 하던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컵라면을 내려놓고 따뜻한 밥그릇을 들 수 있도록 연대했습니다.
이후 밥통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투쟁 현장을 찾고자 했습니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부당함에 저항하는 요양보호사, 대학교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해고 노동자 등 외롭게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 인근은 물론 홍천, 춘천, 전주, 구미, 성주, 부산, 울산, 거제, 성주 등 지방은 물론 제주에까지 달려가,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는 동지들이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머무르지 않고 나아갈 힘을 ‘밥심’으로 나누었습니다.
근 2년 전부터 창궐한 역병으로 밥통의 출동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집회가 취소되면 준비한 식재료에 대한 난감함보다도 목소리를 접어야 하는 동지들의 마음에 먹먹해집니다. 밥통 출동으로 인해 방역당국에 책잡힐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밥통이 가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던 것이 지금은 ‘밥통이 가도 될까요?’를 조심스럽게 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놓고 국솥의 김을 올릴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주먹밥이나 샌드위치, 삶은 옥수수, 찐고구마로 연대해야 합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현장 활동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협동조합 ‘밥통’보다는 투쟁하는 동지의 이름으로
밥통 출동은 밥통과 마음을 함께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밥통 출동 때 오셔서 손을 보태주시는 밥알단 분들이 계시고, 매달 일정액을 후원해주시거나 부정기적으로 식재료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외에도 마음을 담아 지지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밥통에서는 매달 웹진 《밥통》을 제작하여 이 고마운 분들께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웹진에는 매달 투쟁하는 동지들의 현장 소식과 밥통 활동을 담습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밥통의 회계 상황도 꼼꼼하게 기록하여 싣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맙고 소중한 분들은 현장에서 투쟁하는 분들이시지요. 웹진을 처음 기획할 때, 밥통의 활동을 내세우기보다는 밥통이 출동하는 투쟁 현장 소식을 알리자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던 바, 밥통의 이름보다는 투쟁하는 동지의 이름으로 발행한다는 생각이 큽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밥통에 후원하고 계시는 분들이 꽤 되시리라 여깁니다. 밥통의 후원인 분들은 거의가 어딘가 연대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찾아나가시는 분들이니까요. 노동도시연대 총회 때 많은 분들이 후원으로 가입을 해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밥통이 꿈꾸는 다른 세상, 우리 모두가 원하는 세상을 위한 연대의 걸음걸음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검은 호랑이의 기운으로 힘찬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한광주 회원님은 오랫동안 서초구에 거주하셨으며 <다른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활동가이자 장애인권운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