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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해비타트는 1985년부터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을 ‘세계 주거의 날’로 정하고 주거권 확대, 열악한 주거환경의 해소를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 왔습니다. 얼마 전 신림동 반지하 가족 참사 이후,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던 정부 대책이 논란이 된 바 있는데요.

대다수 시민•노동자가 주거를 공공이 아닌 오로지 시장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선, 어쩔 수 없이 처해있는 주거 환경이 생사의 갈림길이 되기도 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지난 몇 년 간 치솟아 올랐던 부동산 시장은 최근 하락하고 있지만, 다주택 소유주들의 투기 자금이 점차 말라가자 청년과 서민 세입자를 상대로 한 임차 보증금 미반환, ‘전세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지역별 전세가율’에 따르면 강남구도 평균적으로 전세 보증금이 집값의 80.7%에 육박했다고 하니 안심할 수 없습니다.

꼭 강남•서초 지역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주거권’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이번 호에는 박예준 회원 님께서 사람 답게 ‘사는’ 것의 기본인 집에 대한 이야기를 기고해 주셨습니다.    

살다 ⑴

II. 동사 「…에,…에서」

1. .어느 곳에 거주하거나 거처하다.

‘사람 답게 사는 것’은 여러 범주가 있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에게 ‘주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몸 누일 자리만 하나 있다고 해서 우리는 쪽방이나 고시원, 여관 달방 같은 곳을 괜찮은 주거라고 하지 않는다. 나의 생활 영역과의 접점, 함께 사는 동물이나 사람에 대한 고려, 생활에 필요한 적절한 분리와 배치 등 각자에게 필요하고 맞는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괜찮은 거주 공간’이 될 것이다.

서울에서 가족 두 명과 함께 18년 째 살고 있다. 그 모두를 강서구 화곡동이라는 생활 반경 안에서 살았고,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사는 세 번을 했다. 서울이라는 지역과 자가가 아니라는 조건에 비해 이상하게 각 집들마다 길게 살았다. 심지어 한 번의 이사는 집에 물이 새는 등 이유로 아주 짧게 살았으니 실질적으로는 한 집에서 6년 꼴로 산 셈이다.

18년 전 매우 가난했던 우리 가족의 첫 서울 집은 언덕 한복판에 있는 반지하 방이었다. 다가구라고 하기에는 뭣하고, 단독주택 지하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 다음 집은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였고, 약간 더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두 집 모두 집주인이 집을 팔고 새 건물을 짓게 되어 나왔다. 가난한데 다사다난하기 까지 한 우리 가족에게는 월세도 거의 올리지 않고 시끄러운 것도 참아주며 오래 살게 해준 참 고마운 집주인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굳이 월세를 올리기도 애매한 집이기도 했다. 썩 좋은 주거 환경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꽤나 먹고살만하게 살게 된 지금도 여전히 반지하 집에 산다. 물론 이전 집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조건과 환경이지만,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다른 가족 세 명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지상에 있는, 낡지 않은 집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렇다고 나뉘어 살기도 팍팍하다. 근래에는 내가 사는 강서구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세 사기가 벌어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집들은 주거 비용이 매우 크다.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청년으로 분류되는 나는 ‘전형적인’ 청년에는 해당되지 않아 별 체감이 없지만, 당사자들은 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가끔 혼자 살 집을 알아보면, 여러 대출 제도가 생긴 이래로 원룸 전세가 딱 그만큼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마저도 제도 활용이 녹록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데 이 주거 문제가, 청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주거 급여를 받는 혼자 사는 노인도, 부모를 부양하는 중년의 사람도,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사는 나도, 비싼 주거 비용에 허덕이며 정주하기 힘든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다. 운이 좋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집 없는 모든 사람이 주거난을 겪고 있다. 이미 주거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올해는 10월 3일이 세계 주거의 날이다. 주거권이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리기 위한 날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주거권은 과연 인권인가? 어떤 것에도 선행 해야 할 인권이 재산권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 받고 있는 현실은 부동산 정책이 모조리 대출 관련된 것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 박예준 회원은 노동도시연대 창립부터 회원으로 함께하고 있고 현재 노동자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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