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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3일, 오전부터 부슬비가 내리던 강남‧서초 지역에 오후 3시 8분부터 4시 3분까지 시간당 20mm 수준의 다소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기상청 AWS 지역별 상세관측자료 – 서초2동주민센터 인근 서초관측소) 그 직후 일부 지역 도로가 침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다행히 심각한 피해는 없었습니다.

침수된 곳들은 ▲반포한강공원 및 잠수교 남단 한강 수위 상승으로 수일간 침수 ▲방배2동 사당역 인근 도로 맨홀 역류 ▲논현1동 영동시장 인근 도로 10cm 가량 침수 ▲논현1동주민센터 인근 도로 10cm 가량 침수 ▲논현1‧2동 및 역삼1동 언주역사거리 인근 20cm 가량 침수 ▲서초2동 롯데칠성 앞 맨홀 역류인데요. 이중 반포한강공원을 제외하면 ‘내수범람’(하수‧배수 문제로 시가지 침수)에 해당합니다.

작년 8.8 수도권집중호우 때 서울시는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내려 통수능력 한계로 피해가 컸다’고 했지만, 사실 그보다 반의 반 정도의 호우에도 상습침수지역은 위태로웠습니다. 강남‧서초 지역의 수해는 비의 양과 크게 상관없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데요.

하수관 개량 상태, 빗물받이 관리에 희비 엇갈리는 침수

침수 모습을 살펴보면 논현1동주민센터 앞부터 영동시장 근처 도로는 맨홀과 도로횡단용 빗물받이가 역류했습니다. 논현2동 언주역 3번출구 위 골목길도 도로횡단용 빗물받이가 역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요. 서초2동 롯데칠성 앞 도로도 맨홀이 역류해 차량 통행에 잠시 지장을 줬습니다. 이 3곳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2023년도 서울시 예산 200억 가량을 들인 <강남역 일대 수해 방지 종합대책>으로 수로를 신설하고 하수관 개량 공사를 하는 대상지 근처라는 점입니다.

논현1동의 경우 ‘논현초 일대 저지수로’ 공사가 원래 8월 완공 예정이었지만, 지하매립시설을 옮기는 문제로 늦어지고 있습니다. 서초2동 롯데칠성 앞 맨홀은 작년에 시민 1명이 사망한 진흥아파트사거리, 서운로 인근에 있고요. ‘서운로 저지‧고지수로’ 공사는 수년째 지지부진한데 올해도 지하매립시설을 옮기기 위한 공법 문제로 갈등이 있어 5월에야 공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년에 시의회를 통해 수십억 예산을 삭감했다가, 이후 예산을 증액해 140억 원의 사업비를 들였습니다. 이 공사가 잘 끝나야 빗물이 반포천 유역분리터널로 수월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데요. 궁금합니다.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데 해결이 어려운 이유가요. 서울시와 강남‧서초구는 지하공간통합지도(GIS)라도 제대로 작성해놓고 있는 걸까요?

그런데 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서초2동 롯데칠성 앞 맨홀 역류 현장에서 놀라운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맨홀 뚜껑이 엄청난 수압으로 솟아올라 물이 펑펑 흐르는 순간에도, 바로 옆에 매설된 빗물받이(사각암거)에 시원스럽게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빗물받이가 정상 기능을 하고 있는 모습이죠. 논현동 일대에선 되레 빗물받이도 같이 넘쳐흐르던 모습과 비교되는데요. 영상에는 빗줄기가 잦아들 무렵, 전담처리반이 출동해 빗물받이를 다시 청소하는 모습도 담겨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ttXkBJ_8GaI?feature=share)

작년 8.8 수도권집중호우 이후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진 빗물받이. 서초구의 경우 2019년부터 3년간 빗물받이 관리 실적이 25개 자치구 중 최하위를 기록한 바 있는데 이것이 물난리를 더 키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날엔 피해가 없었던 이유는 빗물받이가 제 역할을 했기 때문 아닐까요.

강남역보다 고지대가 먼저 침수, 무조건 ‘대심도 빗물터널’이 해법?

서초2동 롯데칠성 앞 도로의 해발고도는 10~11m로 강남‧서초 지역 일대에서 가장 저지대입니다. 빗물받이가 정상 기능을 하던 이곳과 달리, 이날 물이 가장 많이 넘쳤던 논현1동 부근은 해발고도 20~40여m 가량으로 부근에서 고지대에 속하는 편인데요. 차량들이 파도를 헤치며 달리는 모습이 언론에 많이 보도된 언주역사거리는 강남대로와 같은 경사진 항아리 지형으로 주변보다 고도가 10여m 정도 낮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작년에 상대적으로 침수 피해가 덜했습니다. 아마도, 이날 논현1동 일대 고지대에서 흐른 물이 언주역사거리로 흘러 고인 것은 아닐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8.8 수도권집중호우 이후 강남역 일대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 수천억을 들여 강남대로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겠다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연말 착공하겠다던 서울시의 계획은 노동도시연대를 포함해,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일각에서 이미 예견한대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월 13일 오후 시간당 20mm 이상의 비가 내린 뒤 강남역 일대는 괜찮았으나, 정작 물에 잠긴 곳들은 강남대로보다 지대가 더 높아 하수관 개량 공사가 늦어져도 피해가 덜할 것이라 예측된 곳들입니다. 이런 세세한 차이가 있음에도 여전히 서울시와 일부 언론에선 ‘대심도 빗물터널’만이 강남‧서초 지역 침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주장합니다.

오죽하면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 자료를 보면 강남 침수지역이라 할 때 무조건 강남역이냐’, ‘다른 동은 서울시가 만든 도시침수지도에도 누락되어 있다’는 취지의 성토가 나왔을까요.

(제319회 서울시의회 제3차 도시안전건설위 회의록, 물순환안전국 업무보고 시 김길영 의원 발언, 2023년 6월 21일)

기후위기 시대, 세계적으로 풍수해 재난에 대처하는 ‘비구조적 해법’(Non-Structure Measure)과 ‘자연기반해법’(NBS)이 대규모 토목공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재난의 이력을 과학적으로 살펴보고,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이는 방법보다 빠르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챙기는 것이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기본 바탕이 될 것입니다. 비가 또 오기 시작하면 이를 늦출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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