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문화원의 유인촌 전 장관 강연 초청을 반대한다!
– ‘블랙리스트’ 사태를 망각하고 피해 예술인에 대한 공감 없는 문화행정 규탄한다!
서초문화원이 오는 6월 28일 열리는 시민대상 교양강연프로그램 <차이나는 아카데미>에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초청해 ‘문화예술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이다’라는 주제의 강연을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우리는 서초문화원의 이번 연사 초청을 반대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피해 예술인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는 졸속 문화행정을 규탄한다.
서초문화원은 2019년부터 총 19차례에 걸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명사초청강연을 진행해왔다. 그동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문‧예술계 종사자 및 전문가 16명이 서초구 주민을 만났고, 분야와 소신별로 비교적 균형 있는 섭외가 이어지며 재초청 요청도 잇따르는 등 양질의 프로그램 수준을 유지해왔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연사 초청은 이 프로그램의 운영 취지는 물론이고, 서초문화원의 설립목적인 ‘지역사회‧주민 문화예술 소양 진흥’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일 뿐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사(史)의 가깝고도 어두운 과거 ‘블랙리스트’에 피해 입은 문화예술가들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잘못이다.
유 전 장관은 재임 3년간 인사권 및 예산사용처 전횡 의혹, 막말 파문 등 숱한 논란을 불러온 인물로 대중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취임 직후부터 이른바 ‘좌파 척결’ 발언과 한국문화예술위원장 해임 사태를 통해 민주 사회에서 누구보다 국가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계에 진영논리를 덧씌우고, 통제와 검열을 부활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유 전 장관은 퇴임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문화예술계의 ‘종북세력’을 걸러줘 정권 재창출에 기여했다는 ‘망발’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박근혜 정권 시기 ‘블랙리스트’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2017년 국가정보원 개혁위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유 전 장관 재임 시기부터 50여명 이상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작성, 운용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극구 부인했고 당시 피해 문화예술인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못한 채 ‘블랙리스트’ 사태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유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의 ‘실행범’이었는지 여부는 현재 밝혀진 바 없지만, 당시 주무부처 최고책임자였던 그에게 진심어린 반성과 자숙이 요구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밖에도 우리는 지난 2008년 유 전 장관의 ‘좌파 척결’ 발언 이후, 갑작스러운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로 거리에 내몰린 성악가들이 10여년 넘게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역사를 기억한다. 또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인선과 교육과정 개편에 외압 논란을 불러일으킨 유 전 장관의 행보를 기억한다. 모두 서초문화원이 소재한 지역, 서초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초문화원은 이러한 역사를 전부 지우고자 하는가?
이미 수년 전에도 유 전 장관을 강연에 초빙한 천안예술의전당이 지역주민, 문화예술인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이를 취소한 바 있다. 서초문화원은 지금이라도 연사 초청에 신중한 고려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행사를 제고해야 한다. 얼마 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주최 측이 ‘블랙리스트’ 관여 이력이 있는 오정희 작가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항의 행동이 있었다.
서초문화원이 유 전 장관 초청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민주 사회에 당연하고 보편적인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며 권력의 부당한 검열을 거부하는 시민과 문화예술계 당사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방문화원진흥법에 따라 기관을 위탁 운영하는 서초구의 문화행정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6월 26일
백만노동자의 도시 강남, 노동도시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