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23.3.18 보도
2020년 5월 강북구 A아파트 입주민의 지속적인 갑질과 폭행으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가 투신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가해자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은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에게 산재를 인정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4일 아침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선경아파트단지에서 10여 년 근무하던 고 박○○ 경비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감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한 데 대해 17일 오전 아파트노동자서울공동사업단·전국민주일반노동조조합 서울본부가 공동으로 이 아파트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국민주일반노조 공동주택분과조직위원장 겸 아파트경비노동자전국사업단 정의헌 단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령 노동자 고 박○○ 경비노동자에게는 고단한 노동이지만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진다′는 자긍심과 보람도 컸을 떳떳한 일자리였을 것″이라며 ″용역회사가 바뀌면서 그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에 맞부딪히며 겪었을 상심이 얼마나 깊었을까″라고 반문하며 탄식했다.
정 단장은 ″대한민국 아파트 주민들에게 부탁한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달라. 특히 선경아파트 주민 여러분은 동료를 잃고 숨죽이며 애통해하는 남아있는 노동자들이 더는 두려움 속에서 일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 달라. 전국 아파트에 거주하는 국민 여러분도 아파트 시세 변동에만 관심 기울이지 말고 여러분 안전·편의 위해 일하는 60·70대 노인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과 조건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관심 가져주면 안 되느냐″고 호소했다.
다음 발언에 나선 노동도시연대 남궁정 사무국장은 ″2022년 12월 경 새로운 관리소장이 부임했다. 동료 경비노동자 증언에 따르면 신임 관리소장은 ′아파트 정문 차량 관리·수목 정리′를 지시하는 등 법적으로 경비노동자 본연의 업무가 아닌 지시를 부쩍 늘렸다고 한다. 이것뿐 아니라 현장에서 고성·고함·복명복창 강요·인격적 모욕을 느낄만한 언행이 계속 발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세차 요원과 청소노동자들이 지하실에서 사복과 작업복 교체 착용 금지를 명령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현장 노동자 증언을 전했다.
이어 남궁 국장은 ″지난 8일 신입 경비원 실수·장비 오작동 등에 관한 책임을 이유로 갑자기 고인의 보직을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노동자로 변경했다. 고인은 결국 14일 주변 동료들에게 A4 한장 분량 글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한 뒤 자신이 근무하던 10동 9층에서 투신했다. 이 글에는 그동안 함께 근무하며 고생했던 동료 노동자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관리소장이 그동안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가중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며 경위 설명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연구위원이자 공인노무사는 선경아파트 각종 근로계약 서류 검토 의견으로 ″근로계약 기간 3개월이 직장 내 괴롭힘·입주민 갑질 근본 원인″이라며 ″장시간 휴식 시간도 문제다. 휴식 시간은 9.5시간(주간 2.5시간, 야간 7시간)이고 야간 순찰 1시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휴식 시간이다. 통상적인 경우보다 긴 휴식 시간일 뿐 아니라 야간 순찰시간을 특정하지 않아 휴게시간 사용이 유동적이라는데 문제″라고 했다.
남 위원은 ″업무수행평가를 근거로 재고용 여부 결정하면서 업무수행평가 방식·절차·기준 등에 관해 더 확인해야 하겠으나 위압적인 노무관리 도구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퇴직금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4일 안에 정산해야 하는 강행규정이다. 이런데도 이 아파트는 ′퇴직금을 퇴사 후 최대 2개월 이내 지급해도 법적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음′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어 근로기준법까지 위반했다″고 짚었다.
또한 남 위원은 ″이 아파트단지는 근로계약에 포함할 내용을 ′자술서′ 형식으로 받고 있는데 ′만일 근무지에서 타업무 종용 시 본사에 얘기하지 않을 경우 본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음′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어 이 또한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휴게시간 동의서도 검토해 본 결과 ′만일 근무지에서 주어진 휴게를 침해당할 때 본사에 얘기하지 않을 경우 본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음′이라 규정해 두고 있어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남 위원은 동료 노동자 증언 검토 결과로 ″다음 경비노동자가 근무교대할 때 인수인계 차원에서 30분 동안 근무복 벗지 않고 같이 앉아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것은 30분 연장근로에 해당해 임금 미지급 문제 발생한 것″이라 했다.
그는 ″경비노동자끼리 서로 점수(10점 만점) 매기도록 해 자리 오래 비우거나 문 빨리 안 열거나 등등 (아마도 인사) ′고과′라며 구두지시한 사항으로 인해 재고용 압박 느꼈다고 한다. 이는 동료 경비노동자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드는 비인격적인 평가방식으로 (전형적인)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경비노동자 당사자 발언에 나선 노원구 소재 아파트단지에서 근무하는 이광현 경비반장은 ″먼저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경비노동자 명복을 빈다. 고인은 경비노동자 반장 직책을 역임하다 강제로 반장 직책을 빼앗겼다고 들었다. 저도 제가 일하는 아파트에서 반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고인이 처했을 근무환경에 관해 공감을 표시했다.
이광현 경비반장은 ″저 또한 회사 관계자에 의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제가 근무하는 아파트단지 경비원과 미화원은 상습적으로 1년 넘게 임금을 체임당한 적 있다. 그게 작년 말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밀린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고 싶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회사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자마자 부사장이 ′경비는 노조 활동을 못 하게 돼 있다. 노조 탈퇴명단 제출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회사 간부가 수시로 전화해 탈퇴를 강요하고 협박했다. 하지만 저는 노동조합 덕분에 오히려 부당노동행위 죄목으로 회사를 고소하고 사과도 받아냈다. 이후 월급 밀리지 않았고 근로조건 저하도 막아냈고 초단기 근로계약도 근절했다. 고인과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저는 단지 오늘도 살아남은 사람″이라며 애통해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기자회견 참여하며 기사 하나 봤다. 이 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항의하는 바람에 경비·미화노동자들이 정문에 게시한 현수막을 철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비노동자에게는 동료 죽음을 추모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사람이다. 24시간 맞교대 근무 다음 날 경비복만 벗으면 여느 사람처럼 우리도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비복만 입으면 사람 아닌 취급 받는다. 그래서 돌아가신 경비노동자는 우리의 잃어버린 절반인 것만 같다″고 했다.
*링크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11059&CMPT_CD=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