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2020.4.24 보도
서초구 한 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세입자가 건물주의 리모델링 공사를 막던 중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일이 벌어졌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해당 사태를 막을 법이 없었다며 법 제정을 요구했다.
24일 세입자 고 김성철 씨의 유가족과 시민단체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서초구 효령로에 위치한 건물 1층 임대차 계약을 맺고, 더덕 전문점 ‘꼴더덕꼴더덕’ 가게를 열었다. 건물주는 S업체였다. 김씨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2018년 3월 가게를 오픈했다. 그런데 오픈한 지 2개월 만에 건물주 측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1년 동안 정확한 공사 계획을 물어도 ‘당장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김씨는 공사가 강행되면 영업에 차질이 생기고 필연적으로 리모델링 이후 월세 인상이 불가피한 점 등을 걱정하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가슴 통증을 수시로 느꼈다.
그러다 2019년 11월 건물주는 리모델링 공사를 할 것이며 김씨 가게의 주방 일부를 철거한 뒤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김씨가 항의하자 임대인은 12월 협의안 3가지를 제시했다. 협의안은 모두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며 공사를 강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돈 문제가 아니며 주방 일부를 철거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 건물주는 서초구청으로부터 공사 인허가를 받았다. 구청은 세입자인 김씨와는 어떠한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공사는 2월 6일 들어갔다. 김씨는 가게를 운영 중이었다. 공사에 동원된 이들은 가게 앞 방부목 데크를 일방적으로 부쉈다. 3월 8일에는 펼쳐져 있던 차양막을 임의로 접었다. 이에 김씨는 ‘먼지가 날리는데 사전에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양막을 다시 펼치려고 하다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즉시 119로 후송됐지만 다음 날인 9일 오전 숨을 거뒀다.
김씨의 아내는 이날 가게 앞 기자회견에서 “그래도 인간이라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고 자기(건물주)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고 협의할 것도 없다는 말 뿐”이라며 “저희 가족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루하루가 힘들고 막막하다. 모르는 게 많고 힘없이 당하고만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 딸은 “불과 며칠 전까지도 방송 촬영을 마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 재기해보신다고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돌아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이 모든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너무 원통하다”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주인 S사는 “본 건물은 30년 된 노후건물이라 지난 2년간 80% 공간이 공실이었기에 부득이하게 리모델링을 실시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아무리 돈이 중요하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는 사회라고 해도, 코로나19로 특히 임차 상인들이 더욱 힘든 와중에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이고 폭력적이고 파괴적으로 우리의 이웃을 (희생시키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소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리모델링 관련해서 명확한 법규정이 없다”며 “리모델링의 경우 사전에 고지를 하지 않았으면 리모델링하는 동안 영업상 손해는 매출액 기준 건물주가 100% 책임을 지도록 법제도를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는 “공사를 강행한다는 통보는 계약 기간이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사실상 영업 중단을 통보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민법 제623조에는 임대인이 임차인 행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시돼 있는데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 대표는 서초구청의 인허가를 내준 것에 대한 문제도 짚었다. 그는 “서초3동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부터 자치구의 건축인허가와 건축위원회 심의는 건축법과 안전 관련 법률을 위배하지 않으면 민법인 상가입대차보호법 등의 위반 여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사태에 대비한 법률이나 조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억울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임차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령 정비나 조례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