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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2020.12.21 보도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살던 김 씨 모자의 고단했던 삶이 전해지면서 한편으로 대표적인 부촌 마을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에 의아함을 나타내는 반응이 있었다. 서초·강남 일대에서 재건축 부동산 관련 활동을 이어가는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는 지난 19일 <민중의소리>와 만나 “바로 여기 이번 사태의 본질이 숨어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 서초구 기초생활수급자는 4천31가구, 5천846명이다. 전체 인구 43만여 명 중 1.3%다. 서울시에서 세 번째로 적은 수지만 빽빽한 빌딩 숲 틈에도 김 씨 모자와 같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존재한다.

유 대표는 “숫자가 적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라며 “멀리 갈 필요 없이 10년 전 제가 수급자였다. 장애가 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수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빈곤의 끝은 누군가의 죽음인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고인이 거주한 동네는 일반 주택가가 모인 곳으로, 주변은 한창 재건축이 진행 중인 유령도시다. 그 동네도 재건축 계획이 진행된 지 10년째고, 이제 이주대책을 세우고 철거하려는 단계다. 김 씨 모자가 그 동네에서 10년간 살았다고 들었는데, 재건축 계획이 수립될 당시니 싼값에 들어가서 내내 언제든 나가야 한다는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옆 동네인 방배5구역에서 최근 폭력적인 철거가 발생했다. 명도 강제집행 과정에서 주민들은 “집행 전 세입자들의 거취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무작정 철거에 돌입했다”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용역들에 의해 주민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안전한 공간이 필수인 코로나19 시대에 이들은 결국 거리로 내몰렸다. 유 대표는 “김 씨가 살아있었어도 방배5구역 같은 일을 안 당했을 리 없다. 주변이 뒤숭숭하니 김 씨도 재건축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 모자 사건이 씁쓸한 이유는 “이런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유 대표는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빈곤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 강남의 큰길로 다니니 빌딩만 보이지만, 한 골목만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논현동에서 자신의 뼈를 갈아서 합숙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대부분 식당 등 서비스직종이나 성매매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군데군데 빈민촌이 있다. 강북보다 오히려 강남에 더 남아있다. 강북은 최근 들어 뉴타운을 짓기 시작했지만, 강남은 이미 개발을 많이 한 상태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구룡마을, 재건마을, 수정마을, 달터마을은 강남구에, 헌인마을, 응봉마을은 서초구에 있다. 유 대표는 재건축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공적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의 삶도 김 씨 모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 대표는 “10년 전 저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한부모가족으로 장애가 있는 어머니가 수급권자였고 제가 부양의무자였다. 당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수급 대상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는 빈민층의 ‘족쇄’라고 유 대표는 비판했다. 그는 “근본적인 원인은 같다. 민법상 개인 부양의 의무는 가구에 일차적으로 있다. 그러니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가구 중심이다. 기초생활수급 안내 책자를 보면 3분의 1가량이 가족 구성 관련 내용이었다. 법적으로 누구까지를 가구로 볼 수 있는지 굉장히 길게 설명하더라. 가구 안에 부양의무자가 있는지 따져보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며, 범인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지 못한 정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의 수입은 주거급여 20여만 원이 전부였으며, 부양의무자인 딸과 함께 사는 전 남편에게 사정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생활·의료 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아들 최 씨는 발달 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장애등록을 하지 않아 별도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유 대표는 “끔찍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죽는 게 답이더라.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수급자에서 탈출했다. 급여가 나온다고 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고 그마저도 모두 병원비와 활동보조비에 들어갔다. 장애 등급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라며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를 완화한다고 하지만 완전히 폐지하지 않으면 계속 발목 잡힌다”라고 강조했다.

*링크 : https://www.vop.co.kr/A00001535584.html?fbclid=IwAR0-_u2y7yoEzJK1pdyHXINwf80jkpiw1FA98pWETwsKTcQy0oj8vgu7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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