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회원기고

[회원기고] 진짜 ‘자전거 중심도시’ 강남을 원한다 – 뉴스레터 21년 8월호

By 2021년 09월 03일10월 11th, 2022No Comments

 

2015,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자전거 출근은 어렵지만, ‘자전거 퇴근은 하고 싶었던 나에게 따릉이의 도입은 일상을 바꾸는 혁명이었다. 지금이야 따릉이 정류장이 서울시 전역에 촘촘하게 퍼져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강남구엔 따릉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동대문에서 따릉이를 타고 중랑천을 따라 달려서, 성수동 정류장에 반납하고 영동대교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그 전까지 자전거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따퇴‘(따릉이로 퇴근)하면서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따릉이 전도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SNS에 따릉이의 유용성을 설파했다. 지금 찾아보니 따릉이를 언급한 내 페이스북 게시물이 48개에 달한다. 그 중에서는 강남구에 따릉이 정류장이 없어서 슬프다, 도대체 언제 따릉이가 생기는거냐 한탄하는 글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7년 여름, 따릉이가 강남에 상륙했다. 집 앞에 따릉이 정류장이 생기다니! 정류장 설치 공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타이밍 좋게도 나는 마침, 신논현역 인근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학동로를 따라 4.8km. 따퇴가 충분히 가능한 거리. 나는 매일 매일 따퇴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 했다.

 

드디어 따퇴를 하게 된 날, 기쁨보다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전까지는 몰랐지만, 강남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매우 괴로운 동네였다. 학동로는 6차선 넓은 대로를 자랑하는 길이지만, 모든 공간을 차에게 양보한 탓인지 인도는 좁고, 보행자는 많다. 네이버지도에는 분명 자전거도로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표식이 되어 있지 않은 보행겸용도로고, 그나마도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아 자전거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또 골목마다 자동차 출입이 끊이지 않아, 골목 상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는다면 사고가 나기 딱 좋았다. 거리로 따지자면 동대문에서 퇴근하던 때보다 훨씬 가까워졌지만, 퇴근길 자체는 오히려 더 힘들어진 셈이다.


강남에서 살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니. 강남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 동네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동네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따퇴이후엔 아예 내가 살기 불편한 동네라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누군가는 강남 만큼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고, 살기 좋은 동네가 어딨냐고 하겠지만, 겨우 4.8km를 자전거로 이동하기 어려운 곳이 과연 살기 좋은 곳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최근 노동도시연대 회원들과 함께 읽은 책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에선 내가 당시 왜 강남을 살기 불편한 동네로 느꼈는지, 명확히 설명해준다. 저자 최성용은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많은 도시공간이 자동차에 배정된다. 길이 막히면 길을 넓히고, 주차난이 심화되면 주차장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 도시에서 자동차에게 배정된 공간은 점점 늘어갔다. 2018년 기준 서울에 등록된 자동차의 수는 3124651대였고, 이들을 위한 주차면수가 4129723면이 존재했다


현행 주차장 면적 기준은 가로 2.5미터, 세로 5미터로 12.5 제곱미터다이 면적을 주차면수와 곱하면 약 52.7제곱킬로미터로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한다종로구와 용산구를 합친 면적만큼이 주차장으로 배정된다. 물론 이는 주차장 출입을 위한 진출입로와 주차장 내 이동도로는 뺀 면적이다. 면적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필요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꼭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과연 우리 도시에서 이렇게 넓은 면적을 자동차 주차를 위해 할당하는 방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자동차 중심 도시서울에서도, 가장 자동차를 위한 동네가 바로 강남이다. 서울연구원(2018)에 따르면, 강남구의 가구당 자동차 수는 1.15, 서초구는 1.17대로 서울에서도 가장 많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면적 역시 강남구가 5.67제곱미터, 서초구가 5.73제곱미터로 서울에서 제일 넓다. 주차면 수 역시 마찬가지다. 강남구의 주차면 수는 무려 39만개가 넘는다. 최성용의 계산 방식을 그대로 따르자면, 강남구의 주차면수는 4.87 제곱킬로미터로 여의도 한개 반 크기의 면적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아니, ‘자동차 중심이면 뭐가 어떤가 싶을 수 있다. 자전거 타기 좀 불편할 수 있어도, 자동차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하면 되는것 아닌가? 너가 자전거 출퇴근을 고집하니까 괜히 트집 잡는거 아니냐 싶을 수도 있다. 자동차가 많고, 도시공간이 자동차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자동차는 운전자에게도, 자전거 라이더에게도, 보행자에게도, 교통약자에게도 위험하다.

 

도로교통공단이 평가한 2019년 지역별 교통안전지수에서 강남구는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점수 평균은 71.33점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꼴찌다. 1년 동안 3,720건의 교통 사고가 일어났고, 14명이 죽었으며, 5,178명이 부상 당했다. 강남구 인구가 5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강남구민 백 명 중 한 명은 교통사고로 다치는 셈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의 1.5배에 달한다.

 

강남은 개발 계획 수립 당시부터 높은 도로율을 통해 자동차 도시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반세기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도시의 기본 축을 자동차에 두고 성장해왔다. 그 결과, 전국에서 가장 높은 부동산 가격을 자랑하지만,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람도 가장 많은 동네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강남은 과연 살기 좋은 동네일까? 이제는 자동차가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을 재편해야 하지 않을까?


* 청담동에서 오래 거주한 김예찬 회원님은 ‘자전거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시민운동가이며, 현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