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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생태/교통

‘흉물 남기기’라구요? 오세훈 시장님, 그거 아닙니다 – 서울시 정비사업 흔적남기기 백지화 반대 기자회견

By 2021년 10월 29일10월 11th, 2022No Comments

 

노동도시연대는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사)문화도시연구소,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지난 22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본관 앞에서 <서울시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백지화 반대, 실질적인 진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미 수차례 전해드렸지만,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구역 내의 근현대 역사유산을 보존 및 활용하는 ‘흔적남기기’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이 있었는데요. 이를 재검토할 것과 역사유산 보존방안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흔적남기기’는 박원순 전 시장 재임기인 지난 2012년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 이후 2013년 서울시 가이드라인 제정, 2014년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8조 개정, 2015년 「2025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실무매뉴얼, 2016년 전수조사와 DB구축, 2017년 가이드라인 보완, 2018년 서울시 흔적남기기 소위원회 구성 등 과정을 통해 제도화되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정비사업 추진 시 역사문화유산 보존 활용계획 수립, 흔적남기기 시설 기부채납으로 인정, 개발용적률 인센티브 5% 부여와 용적률 산입 제외 등인데요.

도시개발 과정에서 빠르게 사라져가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으로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부분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과정에서 미처 발견되지 못하거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근현대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박원순 전 시장 재임기에 도입된 ‘흔적남기기’는 이전과 비교해 발전된 형태의 문화정책이자, 도시개발 공공성을 최대한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요.


특히 강남·서초 지역 재건축 아파트의 ‘흔적남기기’ 대상과 사업내용들이 최근 서울시 도시계획위, 건축위를 통해 백지화되는 상황입니다. 반포주공1단지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한 행정동 전체를 아우르는 규모로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로 주거문화의 역사를 알 수 있고, 1970년대 강남개발이 본격화될 시기의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이며 서울시가 지난 2018년 서울역사박물관을 통해 반포주공1단지 생활문화유산을 조사, 기록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27일,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반포주공1단지의 보존동을 편의시설로 바꾸는게 좋겠다는 자문 결과를 내 흔적남기기는 사실상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불과 4년 전인 2017년 2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곳의 아파트 한 동을 보존해 주거역사박물관과 체험학습센터를 짓는 계획안을 통과시켰는데요. 또 그해 6월 서울시 건축위원회가 이곳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하는데도 그런 사실이 반영되었습니다.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한 결정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자칫하면 소수에게만 지나치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정비사업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기부채납시설 등에 대해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려면 상당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도장을 찍고,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렸던 사항이 어떻게 이리도 쉽게 뒤바뀔수 있는걸까요?


일부 언론에서 ‘흉물 아파트를 남긴다’며 보도했던 개포주공1단지, 4단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포주공1단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택지개발촉진법을 적용하여 만든 아파트이고, 서울 양재천 이남의 지형, 생활모습을 탈바꿈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생활하며 만들어간 단지 내 특이한 경관과 함께 개포동만의 특색 있는 생활문화가 만들어져 온 곳입니다.

지난 2012년 서울시 도시계획위는 흔적남기기를 조건으로 재건축을 가결해주었습니다. 2015년 9월 사업시행계획을 신청할 때 서울시는 한 동을 보존해 아파트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리는 것이 최적이며 컨텐츠 제작이나 시설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4단지는 2015년 4월, 조합이 공원 부지와 가까운 기존 아파트 한동을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남기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재건축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서울시는 2018년 7월에도 개포주공4단지의 역사성을 기리기 위해 한 동을 보존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고 지난 6월 서울시는 공식적인 절차에도 없는 간담회를 열어, 재건축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시계획위원회에 사업변경안을 제출할 수 있게 안내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10월로 심의가 예정되었습니다.

서울시가 수년간 방침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고, 세금으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며 일관되게 진행해온 정책을, 한순간에 서울시 스스로 뭉개버리는 일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시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들의 역사성이 이렇게 시장이 바뀌고, 개발 혜택을 누릴 이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워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흔적남기기’가 단순히 박원순 전 시장 개인의 철학으로 세워진 정책도 아닙니다. 이미 대전광역시와 전주시가 흔적남기기 사업을 시행하거나 추진 중이고, 최근 광주광역시가 임동 전남방직‧일신방직 부지개발 TF팀을 통해 1930년대 건축물 보존을 원칙으로 세우는 등 도시의 역사‧문화 가치 보존, 지역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도시계획상의 조치입니다. 미국, 유럽이나 일본의 사례뿐 아니라 국내에도 이러한 공간이 여러 곳 조성되어 있지요. 차츰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서울시의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가이드라인 준수 ▲확정된 대상지와 사업내용 일방적 백지화 중단 ▲서울시 도시계획위, 건축위의 흔적남기기 사업내용 변경 심의 보류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소위원회 운영 내실화 ▲정비사업 시 근현대 문화유산 조사, 지정, 보존방안에 대한 구체적 기준과 조치 마련을 요구하고 서울시청 본관과 서소문2청사, 서울시의회로 나누어 1인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올려드립니다.

기 자 회 견 문

 

오늘날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국가경쟁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듯, 역사환경은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민족 공유의 재산이자 항구적 가치 창출이 가능한 관광자원인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문화유산을 복원할 의무는 있어도 파괴할 권리는 없다. 후손들로부터 역사를 보존하지 못한 세대’, ‘가진 자원도 쓸 줄 모르는 조상이라는 지탄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년 전인 20001019, 국회의원이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언론사에 기고한 글이다. 우리는 21년이 지난 오늘, 이 문장을 그대로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에 들려주고 싶다. 과거 재임기에는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써의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던 동대문운동장과 서울시청사를 기습 철거하더니, 지금은 도시 개발과정에서 지나온 서울시민의 생활모습과 숨결을 남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온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정책을 백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화재 범주에는 속하지 않지만, 도시의 발전과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은 최근 여러 측면에서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다. 많은 이에게 도시 공간은 생계를 위한 생산 활동이 아니면 이를 보상하기 위한 소비유흥 공간과 문화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재와 맞닿아 있는 가까운 과거의 흔적을 통해 시민들은 자신이 생활하는 그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떠올리고, 마음의 안식과 새로운 영감을 얻는 원천으로 삼는다. 또한 지역의 매력요소를 끌어올려 이득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문화유산은 그 대상이나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고 희소성의 기준이 변하기도 하며 우연한 계기로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근현대 문화유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주민들의 난방을 책임지던 오래된 굴뚝이, 실핏줄 같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는 수십년 장인들의 작업장이, 그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치소 감시탑이, 역전 앞 서민들의 애환과 여성들의 아픔이 담겨있는 건물이, 이제는 지어지지 않는 아파트 건물이 증명된 가치가 없어 허물어도 좋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몰역사적인 인식과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치를 증명할 잠시 동안의 틈도 준적 없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울시가 개발 논리에 따라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정책을 백지화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흔적남기기가 이미 진행 중인 곳에서 사업시행사에 의해 눈 가리고 아웅식 꼼수가 일어나고, 문화유산을 망가뜨리고 있음에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는 서울시의 무책임을 고발한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대부분 민간이 주도하며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이들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서울시가 이러한 정비사업 과정에 흔적남기기를 도입하여 자칫 사라질 수도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했던 시도는 이전과 비교해 매우 발전된 형태의 문화정책이자, 도시개발 과정에서 공공성을 최대한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서울시가 그동안 축적된 성과에 대한 면밀한 평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시민 의견수렴 없이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이를 백지화한다면, 향후 도시의 역사성을 보존하자는 취지의 정책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개발논리에 떠밀려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서울시는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라.

, 서울시는 확정된 흔적남기기 대상지와 사업내용에 대한 일방적 백지화를 중단하라.

,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는 무분별한 사업내용 변경 심의를 보류하라.

, 서울시는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소위원회 운영을 정례화, 내실화하라.

다섯, 서울시는 정비사업 시 근현대 문화유산 조사와 지정에 대한 구체적 기준, 보존방안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마련하라.

 

오늘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서울시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내며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과 연대할 것이다.

 

20211022

 

서울시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백지화 반대, 실질적인 진행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 및 연명단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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