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근대문화유산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 토론회를 방청했습니다.
노동도시연대는 2021~2022년 서울시의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정책 백지화와 반포•개포주공 보존활용동(棟) 철거를 막기 위한 활동을 했는데요. ‘문화재’로 등록되진 못했으나 도시의 역사성•다양성을 담아내고 시민•노동자 삶의 흔적이 담겨있는 근현대역사유산, 개발이나 경제성 등의 이유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다르지만 지금도 전국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시민과 행정,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죠.
그런데 반가운 소식, 내년 5월 시행되는 ‘국가유산기본법’은 국가유산에 대한 포괄적인 보호를 위해 현재 지정•등록되지 않은 국가유산의 현황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60여년만에 문화재 관리체계에 근본적 변화가 오는 건데요. 법률과 관계된 기본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화재→국가유산된다… ‘국가유산기본법’ 국회 통과」(2023.4.27 서울신문)
「자연·문화·무형유산의 국가유산체제 법률정비 완료」(2023.7.20 라펜트)
이 법의 제14조(포괄적 보호체계의 마련) 조항은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13조에 따라 지정ㆍ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의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래에 국가유산이 될 잠재성이 있는 자원을 선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예컨대, 역사유산 조사가 이루어지거나 보존활용에 대한 목소리가 있던 충정아파트, 반포·개포주공아파트 보존동 같은 것을 없앤다면 원칙적으로 소송을 걸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국내에 유일하게 보존되어있는 단관 극장이자 60여년 넘는 세월동안 원주시민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카데미극장’ 보존·활용을 위하여 활동하는 원주시민과 문화예술인들. 노동도시연대도 연대하고 있다. ⓒ아카데미의친구들
이날 토론회는 ‘역사문화유산’ 개념의 변천사와 세계적 추세, 현행 등록문화재 제도의 한계, 근현대역사유산 보존·활용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이 이야기됐는데요.
등록문화재 제도는 2000년대 초반,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역사적, 생활사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적 없어 지정하기도 어렵고, 학술적 가치가 논의되거나 시민사회 요구가 있어도 멸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제자들은 ▲전문가와 문화재 행정자원 부족 ▲통일되지 않은 관리체계 ▲일관성 없는 행정의 결정 ▲해당 유산이 사적소유물일 경우 소유권 행사나 행위제한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를 현행 제도의 한계로 들며, ▲필요한 자원 확충 ▲임시지정제도 활성화와 임시등록제 도입의 필요성 ▲유산 손괴 및 관리소홀에 대한 처벌조항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이를 인천, 동두천, 원주, 군산의 사례를 통해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답니다.
서울시의 경우는 어떨까요?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지정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강제력이 없는 일종의 홍보사업입니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여러 이유로 이미 사라진 것들도 많습니다.
근현대역사유산 보존·활용을 위해 그보다 구체적인 정책이 재개발·재건축 대상지 내에 적용된 ‘정비사업 역사유산 흔적남기기’ 사업이었는데요. 법률상 근거는 없었지만 일종의 과도기적 정책으로, 10여년 이상 전수조사 용역, 개발 시 기부채납에 포함해주고 규제 완화 인센티브에 반영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정비사업 가이드라인 제정, 조례 개정, 소위원회 구성 등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시정 방침이 바뀌면서 서울시가 공연히 ‘흔적남기기’ 폐지를 공언하기도 하고, 이미 확정된 내용의 사업이 도시계획위원회나 건축위원회를 통해 뒤집히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발생했죠.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는 20세기 이후 지어진 근현대 건축물 현황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특정 지역이나 주제에 맞는 건축물을 선정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공개 세미나,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절차의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도시의 역사성·장소성, 켜켜이 쌓여온 가치를 보존하고 현재의 상황에 맞게 이어가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겠죠.
물론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근현대역사유산 보존·활용과 관련한 외국의 우수한 사례를 접할때마다 그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우리의 도시에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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