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초 지역에서 시민 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80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2022년 8.8 수도권집중호우 이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노동도시연대도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이 침수되어 수 주간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는데요. 장마철이 올수록 올해도 같은 일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하는 지역 주민‧노동자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 기사 링크 : 「강남 상인들은 두렵다…“올해 또 가게 다 침수될까 봐 걱정”」(2023.6.12, 한겨레)
과연 이번에는 어떨지, 지자체와 관계당국은 대비를 잘 하고 있을까요?
대심도 빗물터널 고집하던 서울시, ‘감감무소식’ 왜?
2022년 8.8 수도권집중호우 피해 직후, 이틀 만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통수능력을 벗어난 유래 없는 강수량’이 문제였다며 전임 시장 재임 시기 중단된 대심도 빗물터널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한 달 후에는 10년간 무려 1조 5,000억 원 가량을 투입해 이를 완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정부‧여당은 그에 화답하듯 2023년도 예산안에 설계비 85억 원을 반영했습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일각에서는 ‘기존 서울시 침수대책에 대한 재검토가 우선이지 대규모 토목공사 발표가 능사가 아니다’는 취지로 우려를 나타냈는데요. 노동도시연대도 논평과 언론 기고를 통해 지적하고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가하는 등 활동한 바 있죠.
그렇다면 지금 대심도 빗물터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본계획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하고, 올해 5월 기본계획이 완성되면 6월에 턴키 방식(설계‧시공 일괄 입찰)으로 업체 입찰을 시작해 오는 11월부터 착공에 돌입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까지 아무런 발표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현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지난 5월 3일, 서울시의회 이숙자 의원(서초2)이 강남 대심도 빗물터널 배수경로에 대해 “서울시의 기존 발표대로 강남대로를 관통하는 직방류가 아닌,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쪽으로 우회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5분 발언으로 서울시를 성토한 겁니다.
* 기사 링크 : 「한강이 아니라 반포천?…빗물배수터널 노선 ‘논란’」(2023.5.18, HCN서초방송)
기본계획이 완료됐어야 하는 시기에 배수경로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언했던 연내 착공은 점점 어려워 보입니다. 애초에 고밀도로 개발되고 지하에 각종 시설과 지장물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강남‧서초 일대에서, 1조원 넘는 규모의 토목공사를 계획하는데 다양한 민원과 변수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던 상황인데요. 노동도시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일각에선 충분히 예상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대심도 빗물터널을 고집한 서울시야말로 과연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반지하 침수방지 설치율 강남 16%, 서초 3%… 배수로 정비도 ‘허송세월’
이렇게 대심도 빗물터널에 돈과 시간이 허비되고 있는 사이, 시급히 챙겼어야 하는 대책들도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일가족이 숨졌던 관악구 반지하 주택 참사 이후, 서울시는 침수 위험 주택에 차수판(물막이판)‧역류방지기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요. 그간 재난관리기금으로만 지원금을 편성한 강남구(올해 5월)와 서초구(작년 11월)도 뒤늦게나마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설치 대상 1만 5,000여 가구 중 설치된 곳은 아직 22%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 기사 링크 : 「반지하 ‘폭우 참변’ 10개월…물막이판 설치 22%뿐」(2023.6.12, 한겨레)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5월말 기준으로 강남구 반지하 주택의 16.4%, 서초구는 불과 3.4% 정도만 설치를 마쳤다고 하는데,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주인들이 침수 피해 이력을 숨기고 싶어 해 설치에 소극적인 것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설치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이지만 또 다른 참사의 되풀이를 막기 위한 지자체 역할이 아쉽습니다.
침수된 도로의 자동차 지붕으로 대피한 ‘서초동 현자’ 사진으로 화제가 됐던 서초동 서운로 일대는 8.8 수도권집중호우 피해를 입기 불과 3일 전, 서울시가 배수로 정비예산을 삭감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는데요. 작년 말 260억 원의 예산이 긴급 편성됐지만, 유감스럽게도 올해 5월이 되서야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기사 링크 : 「올해도 ‘강남역 침수’ 재현되나…수백억 예산에도 배수로 공사 지지부진」(2023.6.20, 쿠키뉴스)
감사원 “지자체가 침수위험지구 지정 꺼리고, 정부는 손 놓아”
한편 6월 8일, 감사원은 <도심지 침수예방사업 추진실태> 보고서를 통해 지난 5년간 전국의 지자체에서 침수위험지구 상당수를 실제 침수예상지역과 다른 도로나 하천 위주로만 지정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요. 감사보고서 전문은 게시물 제일 하단 링크를 클릭하시면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된 곳의 건축물들은 자연재해대책법 상 침수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지만 지자체들이 집값이나 건축 규제 민원을 우려해 지정을 피했다는 것인데, 특히 강남‧서초구를 비롯한 서울의 25개 자치구 모두 내수, 하천재해 취약지역에 대해 침수위험지구 지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참고로 서초구의 경우 2006년 서초동 일대, 2011년 방배천 복개구역 일대를 침수위험지구로 지정했는데 이후 더 추가된 바는 없고 강남구는 한 곳도 지정된 적 없습니다.
* 기사 링크 : 「“집값 떨어질까봐” 강남 침수위험 알고도 모른척했다」(2023.6.9, 파이낸셜뉴스)
또한 감사원은 지자체가 침수위험지구 지정에 소극적일 경우,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행정안전부가 이를 고치도록 권고할 수 있음에도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관리 소홀에 대한 주의 요구 처분을 내렸습니다. 물론 실제 필요한 곳이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된다고 해도 침수방지조치 의무 미비, 행안부 침수방지 수방기준의 모호함, 국토부 건축물 설비기준 규칙의 예외 조항 등 제도의 허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죠.
침수 예‧경보제, 도심지 취약도로 사전통제 환영… ‘비구조적 대책’ 늘려야
치수와 토목, 시설물에 대한 관리 등 ‘구조적 대책’은 홍수나 침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상이변이 점차 극심해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게 세계적으로 재난대응 행정체계 개편, 자연 토양이 아닌 불투수면 관리, 사전 예‧경보와 대피 매뉴얼, 자동화된 수방시스템 연계 등 ‘비구조적 대책’(Non-Structual Measure)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수해안전망 대책에는 이전과 달라진 비구조적 대책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작년 노동도시연대가 언론 기고를 통해 주장했던 내용들도 상당히 반영되었는데요.
* 링크 주소 : 「2023년 풍수해 안전대책 추진」(서울특별시 물순환안전국, 2023.5.30.)
우선 전국 최초로 도로수위계에 일정 기준 이상의 강우가 관측되면 지자체, 소방‧경찰과 재난문자 등으로 알리는 침수 예‧경보제가 시행됩니다. 또한 상습침수지인 강남역‧대치역‧이수역사거리에 ‘침수취약도로 사전통제’를 최초로 시행하고 최근에는 서초대로 일대에서 대응훈련도 실시했습니다.
▲ 올해 최초로 시행되는 서울시 ‘침수취약도로 사전통제’ 대상지 ⓒ서울특별시 물순환안전국
또 침수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이동식 임시물막이판을 시범 운용하고, 8.8 수도권집중호우 당시 서초동에서 시민 2명이 맨홀에 빠져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맨홀 추락방지장치도 연내 10,000여개 이상 설치 완료를 목표로 한다고 하네요. 서초구는 작년 하반기에 서울시 지원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이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단기간에 끝내기도 어렵고 여러 가지 난맥을 불러오는 대심도 빗물터널을 ‘달래기 식 반짝 해법’으로 제시하기 전에, 재난의 타임라인을 면밀히 살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부분에 소홀했다는 것을요. 또한 이제라도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일들을 철저히 살펴 시민안전을 지켜야 합니다.
노동도시연대는 앞으로도 수해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서울시와 자치구가 어떤 대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집행하는지 살펴보면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방향을 고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인재’(人災)를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 참여입니다. 회원 여러분뿐 아니라 안전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누구든 함께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