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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생활하며 불편한 일이 있을 때 꼭 찾게 되는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콜센터입니다. 콜센터 상담노동자는 적게는 8만명, 외주 하청을 포함해 많게는 4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사업장의 90%가 서울에 있습니다. 서울 소재 민간 콜센터 400여곳 중 강남구 업체 수가 2, 서초구가 4위입니다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의 근무여건과 감정노동 실태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도 이런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데요.


* 관련 기사 : 「갖은 폭언에도 “네 고객님”… 극한의 감정노동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아시아경제 2021.10.11일자)


이번호에는 콜센터 상담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지수 회원님께서 업무 중 겪게 된 감정노동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풀어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모든 비행 규정은 피로 쓰여 있다. (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by blood)” 미 연방 항공국이 모든 비행규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에 따르는 인명피해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되고 쓸데없는 비행 규정이라도 알고 보면 모두 지켜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저 문장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모든 상담 주의사항은 악성 클레임으로 쓰여 있다.”

 

물론 인명사고까지 이어지는 비행 규칙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콜센터에도 왜 지켜야 하는지 모를 세세하고 비밀스러운 주의사항들이 있다. 그 규칙들은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대부분이 블랙리스트라고 불리는 고객의 악성 클레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 본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무시할 수 있겠지만 직접 그 근원과 닿게 된다면 몸소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주의사항이 생겼는지. 그 이후에는 모든 주의사항을 군말 없이 따를 준비가 되었겠지만 아뿔싸,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나는 그런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고객님의 기분에 절대 복종(?)’하는 일상


내가 일하고 있는 콜센터(고객센터)에서는 고객의 문의사항이나 흔히 클레임이라고 부르는 불만을 상담하고 접수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당연하게도 신속하게 도움이 필요하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전화를 하기 마련이고 기분이 좋은 경우는 드물다. 그런 고객님을 이해시키고 화를 가라앉게 하는데 친절함은 필수이다. 종종 잘못된 맞춤법의 예시로 사물 존칭을 들곤 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이 문장처럼 존댓말을 안 써도 되는 사물에도 존댓말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고객님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면 사물뿐 아니라 고객님의 어떠한 것이라도 존대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있다.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현장에서 존대와 비존대를 엄밀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때문에 대부분은 만물 존대를 택하게 된다. 상담 중에는 어떠한 것이라도 일단 높이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벨이 울리고 고객에 대한 메모(대부분 주의사항)를 확인하면서 나는 발견하고 말았다. ‘압존법주의. 앞존법인지 뭔지 발음조차 생소한 이 단어는 무엇인가. 지식의 보고인 나무위키에 따르면 압존법이란 존대 여부를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어법이라고 한다. 과연 군대를 예시로 들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이등병이 병장에게 말할 때 누구누구 상병이 한다고 했습니다처럼 병장 기준으로 낮은 계급인 상병에 대한 존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서서히 쇠퇴하는 개념을 마주하고 정신이 아득해진 상태로 어찌어찌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그 고객님에 대한 전설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도 깐깐하고 꼬장꼬장하기로 소문난 그 고객님을 상담하면서 지금은 당연하게도 센터에 남아있지 않은 어떤 상담사가 ‘팀장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 예절에도 능통하신 고객님께서는 “고객이 왕인데 감히 어느 안전에서 다른 사람을 높이냐”며 노발대발하시었고 바짝 엎드린 상담사의 여러 차례 읍소에도 불구하고 센터장을 당장 바꾸라고 품격 있는 비꼼으로 통화를 마무리 하셨다는 것이다


팀장, 센터장, 본사 담당자의 통화를 뱅뱅 돌아도 고객님의 정당한 분노는 풀리지를 않았고 그 상담사는 결국 팀장과 함께 고객님께 직접 얼굴을 보고 사과를 드리기 위해 KTX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 이후 고객님 외에 다른 사람을 통화 중에 높이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는 상담 주의사항이 추가되었다.

 

대화를 하다보면 타이밍이 겹쳐서 동시에 말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서로 먼저 말하라며 양보하는 훈훈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무언의 위계에 따라 한 사람이 말을 계속 이어가기 마련이다. 상담도 마찬가지이다. 고객님과 말겹침이 발생했을 때 상담사는 말을 멈추고 고객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고객 상담은 상호 동등한 대화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고객님은 상담사가 말을 끊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일을 하다보면 원하는 점을 온전한 문장으로 끝마쳐서 말하기를 종종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고객님께서 상황을 두서없이 이어 말할 때는 넌지시 내비치는 속내를 기민하게 파악해서 늘어지는 문장 끝에 매끄럽게 끼어들어 원하시는 게 이게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말겹침 없이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끊을 타이밍을 살피는 것이 이 업무의 숙련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대개 둘 중 하나다. 티 나게 말을 끊어서 상담 평가 점수가 엉망이 되거나, 말을 끊을 타이밍을 못 재고 고객님께서 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듣고만 있다가 상담 시간이 하릴없이 길어지거나.

 

이런 사실을 한 번 더 적어 놓았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말겹침 주의라는 주의사항이 적힌 고객님을 상대할 때는 차라리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 같은 말이 표현만 몇 번이고 바뀌어서 반복된다고 느끼더라도, 어설프게 끼어들어 말 겹침이 발생하면 그 순간 통화시간이 노래방 추가시간처럼 연장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점잖은 고객님은 끼어들지 말고 내 말을 다 들어보라는 핀잔으로 그치지만, 운이 없다면 상담사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2절로 이어지고, 1절 내용을 잊어버렸을까봐 원래 전화했던 목적이 3절로 도돌이표로 반복되고, 실컷 말하다보니 해마가 자극된 고객님께서 깜박 잊고 있었던 다른 불만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4절까지 애국가 규모로 이어지게 된다


긁어 부스럼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듣고 있다는 추임새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마이크를 잠깐 끄고 하품하는 사이에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것 맞냐는 애드립을 구사하셨을 때 제대로 환호를 못한다면 1절부터 다시 앵콜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의사항 메모’가 아닌,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무거워 지는 것 같아서 잠깐 숨을 돌리려고 한다. 블랙리스트라기에는 미묘하지만 곤란한 고객님도 있다. 이 고객님은 정말 자주 전화를 하시지만 늘 필요 이상으로 밝으시다. 항상 상담사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안부를 잊지 않으시고 항상 같은 말씀을 하신다. 안타깝지만 여러 번 요청하셔도 건의 사항으로만 전달될 뿐 바로 조치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늘 말씀하신다. 끈질기게 전화를 하다보면 짜증이 나실 만도 한데 언제나 기운차게 구호를 외치신다. , 캠페인이라도 진행하시는지 구호도 직접 만드셨다. ‘깨끗하게 밝게 자신 있게와 리듬이 비슷한 그 구호를 듣다보면 많은 근심들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휴일도 없이 일하는 나를 위해 함께 하! ! ! 함께 웃어보자고 웃음 체조를 권하셨다. 조용한 콜센터에 메마른 웃음소리가 울렸고 칸막이 너머로 동료들이 루돌프처럼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듣고 말았다, 구호를 외치는 고객님 너머로 배우자 분이 고함치는 소리를. “, 거기에 전화 좀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해! 지겨워 죽겠어, 정말.” 그날 고객님은 처음으로 활기찬 인사도 없이 황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어떤 센터에서는 블랙리스트에게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그렇지는 않았지만 딱 하나 생각나는 별명이 있다. ‘빽빽이’, 매일 정해진 시간 어김없이 전화를 하시는데 일단 안내를 들을 생각이 없으시고 실제로도 귀가 어두우신지 말씀을 크게 하셔서 쇳소리가 난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전화를 했든 결국은 기승전보상을 요구하시고 그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신다


어르고 달래고, 조목조목 따져보기도 하고, 말을 끊지 않고 경청을 해보기도 하는 등 별별 방법으로 응대를 해도 그 날 뿐, 다음 날이면 또 반복이다. 인이 박힌 상담사들은 고함이 시작되면 이제는 거의 대꾸를 하지 않는다.

 

상담사는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제 풀에 지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하루는 새로 들어온 상담사가 빽빽이전화를 받았다. 다들 마음을 졸였지만 의외로 통화는 금방 끝났다. 신입은 고객님 사정이 너무 딱 하시다고 어떻게 접수하면 제대로 처리될 수 있는지 꼼꼼히 물어보았다


나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 나도 저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진심으로 공감하고 해결하려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타성에 젖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물론 그 신입은 2개월 만에 퇴사했다.

 

주의사항이 몇 개가 생기든 악성 클레임은 존재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악성 클레임이 생길 때 마다 끝없이 추가되는 주의사항이 아니라, 감정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이다. 어떤 규칙은 눈물로 쓰여 졌다. 그렇지만 웃기도 한다. 계속 일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건 그런 거니까. 정류장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이곳에서 또 전화벨은 울리고 전화를 받을 것이다.

 

아 씨, 빽빽이 또 지X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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